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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시대의 최면치료증례

  • 해오름
  • 조회 2195
  • 2009.01.15 17:44
30세인 1886년, 프로이트는 결혼했고 개업도 했다. 당시의 정신과란 거의 수용소 수준이었고, 심한 정신병 환자들만 수용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신경과 의사로 개업했다. 내과 환자들과 신경증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을 보았다. 그 중 히스테리 환자들이 흥미로웠다. 프로이트는 최면술을 이용했고, 흥미로운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증세의 발생이 상처받은 기억과 관계가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은 마음의 제2의 의식(비의식)에 숨어 있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치료였다. 브로이어식의 치료를 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환자들은 치료되었고, 수 년 동안 고생하던 증세들도 극적으로 좋아졌다.
 
프로이트가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여자 아이를 극적으로 치료한 증례가 있다.
 여자 아이가 간질처럼 몸을 떨며 발작을 일으켰다. 프로이트는 아이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때는 프로이트가 최면술을 버리기 전이었다. 아이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지 나에게 말해줄래?” 놀랍게도 아이는 개에게 놀랐던 장면을 얘기했다. 사나운 개가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서 혼비백산했던 기억이었다. 증세는 개에게 놀랐던 사건 후에 생겼었다. 프로이트는 아이를 안심시키고 개의 기억을 소멸시키는 치료를 했다. 아이는 좋아졌다. 놀란 기억이 발작의 원인이었다(Freud, 1895. S.E. 2:14).

 카타리나(Katharina)라는 환자는 유년기에 당한 아버지의 성희롱 때문에 숨이 가쁜 증세가 생겼었다(Freud, 1895).

 그녀는 프로이트가 잘 가는 산장의 여종업원이었다. 열여덟 살쯤 되었다. 어느 날 프로이트에게 자기 증세를 호소했다. 자주 질식할 것같이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귀에서 소리도 나고 어지럽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으로 보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은 후부터 그런 증세가 생긴 것이 아닌가?”하고 물었다. 증세는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창문을 통해서 아버지가 사촌언니를 발가벗겨 놓고 성 관계를 하는것을 보았다. 증세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후3일 동안은 구토가 나올 정도로 증세가 심했다. 그리고 수 개월 후 사촌의 임신이 탄로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뒤에 증세가 악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기억을 말한 뒤에도 증세의 호전은 없었다. 프로이트는 그녀가 무언가 좀 더 불쾌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가지 기억을 회상해냈다. 열네 살 때 술에 취한 아버지가 그녀가 자고 있는 이층의 방으로 올라오더니 카타리나의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성기가 그녀의 성기에 닿는 것을 느끼고 놀라서 도망쳐 내려왔던 기억이었다. 카타리나의 증세를 일으킨 근본 원인은 이것이었다. 열네 살 때의 기억을 2년 전인 열여섯 살 때의 경험이 자극했던 것이다. 열네 살 때는 아버지가 침대로 들어온 행위의 의미를 몰랐지만, 열여섯 살 때 아버지와 사촌언니의 성 관계를 보는 순간 그것이 성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증세가 발생했다. 혐오감이 구토증으로 나타났고, 불안 증세는 숨가쁨으로 나타났다. 증세는 2년전의 경험 때문에 발생했지만 병의 진짜 원인은 과거 속에 있었다. 단 한 번의 면담이었지만 카타리나는 신경증의 증세가 성적 흥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체칠리아 마티아스 부인의 경우는 남편에게 들은 욕설이 치통으로 표현된 증례로서, 증세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Freud,1895)

 부인은 45세였다. 치통과 심한 안면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벌써 15년이나 된 병이었다. 치과에서 이를 일곱 개나 뺐지만 효과가 없었다. 계속 아픈 것이 아니라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이유도 모르게 5~10일 동안을 아프다가 또 갑자기 증세가 싹 사라지곤 했다. 매년 한두 차례씩 곤욕을 치렀다. 여러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프로이트는 최면을 걸어서 병의 원인을 찾아냈다. 이때는 아직 자유연상법이 개발되기 전이었다. 부인의 증세는 결혼 직후 임신중에 부부싸움을 하다가 발생했다. 부부싸움을 하는 중에 남편이 마티아스부인을 냉정하게 비난하면서 모욕적인 말을 던졌다.  그순간 부인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한쪽 뺨을 손으로 감싸야했다. 뺨을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뺨을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맞은 것이 실제로 뺨을 맞은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었다. 모욕적인 말을 폭행으로 받아들였고, 이 상징적 폭행을 치통이라는 육체적 증세로 바꿔 버린 것이었다. 남편은 바람둥이였고, 지적인 면에서 부인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둘째아이를 낳은 뒤로는 수 년 동안 성 관계도 해주지 않았다. 이런 남편에 대한 억눌린 분노가 있었다.
 또한 어느 날은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증세가 생겼다.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증세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욕해주고 싶지만 ‘그런 말은 참아야한다, 참아야한다’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말을 내뱉는 것을 막는 것처럼, 음식을 삼키는 것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음식으로 상징화되었다. 목도 치아처럼 상징화 되어있었다. 치통은 모욕감을 상징화한 것이었고, 음식은 욕설을 상징화한 것이었다.
 또 다른 어느 날, 마티아스 부인은 양쪽 미간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거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이 통증은 30년전의 기억이 원인이었다. 그녀를 키워준 할머니는 사납고 엄격한 분이었다. 어느 날 밤 어린 그녀가 방에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할머니에게 들켰다.
 “할머니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절 쏘아 보았어요.”
 할머니의 날카로운 시선이 미간의 통증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 때 생긴 죄책감이 마티아스 부인의 일생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날의 경험이 어린 마티아스에게 ‘나는 음란하고 나쁜아이이기 때문에 불행할 것이고, 죄값을 치를 것이다.’는 믿음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생활이 불행해도 당연한 벌로 믿고 참으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마티아스 부인의 증례에서 증세의 상징성을 발견했다. 이 환자는 더 극적이고 성적인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환자의 비밀보장을 위해서 덮어두어야 했다.

 엘리자베스 폰 알(Elizabeth von Reihart)이라는 처녀 환자는 언니의 남편을 사랑한 죄책감이 하반신 마비를 일으킨 증례였다(Freud, 1895).

 엘리자베스는 책임감이 강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처녀였다. 특히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그런데 하반신 마비가 왔다. 그녀는 형부를 사랑했다. 공교롭게도 언니가 갑자기 죽었다. 죽은 언니의 침대 옆에서 형부를 보며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형부는 본래대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나는 저 사람의 아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죽은 언니에게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었다. 그 때 아랫도리를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언니가 살아 있을 때도 비슷한 증세가 일어난 경험이 있었다. 언니가 앓고 있을 때 형부와 함께 오랜 시간 산책을 즐긴 일이 있었는데, 산책 후 양쪽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 때는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언니 내외가 떠나가고 형부가 그리워서 그와 함께 앉았던 벤치에 앉아 있다가 온 날은 왼쪽 다리에 마비가 왔다. 언니부부를 보며 종종 ‘언니처럼 멋진 남자의 사랑을 받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다리 통증과 마비는 죄책감 때문에 생긴 신체 증세였다. 그 후 마비 증세가 진행되어 2년동안 걷지를 못했다.
 치료는 최면을 이용하지 않고 자유연상을 시도했다. 자유연상을 이용해서 치료한 최초의 환자라는 점에서도 엘리자베스는 유명하다. 치료의 끝 무렵에 프로이트는 그녀의 증세 뒤에 숨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당신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생각을 피하기 위해서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다리의 마비와 통증에 주의를 집중하는 동안 당신은 죄스러운 생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부딪쳐 이해할 수만 있다면 병은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증세 뒤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고 마비 증세가 사라졌다.
 치료의 후일다민데, 어느 날 프로이트는 부인과 함께 무도회에 갔다. 그 곳에서 건강해진 엘리자베스가 어떤 남성과 흥겹게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후 엘리자베스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분석가로서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 때까지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안나 오의 오른팔 마비는 검은 뱀 꿈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장례식 때의 죄책감을 주는 생각이 원인이었고, 카타리나는 아버지의 성희롱이 원인이었다. 마티아스 부인의 치통은 남편의 욕설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된 기억을 찾아 내면 증세가 좋아졌다.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치료였다. 당시 의사들은 마비나 육체의 증세는 모두 육체적인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샤르코 교수까지도 히스테리를 선천적으로 신경이 약한 사람에게서 발병한다고 생각했었다. 발작을 일으켰던 소녀의 경우도 당시의 의사들은 간질이라고 진단했다. 아직 육체에 대한 정신의 영향에 대해서 무지한 시대였다. 정신적인 손상을 준 기억이 육체에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통해서 확인했다. 그리고 기억을 회상하게 하여 치료했다.
 이런 증례들을 모아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저로 《히스테리 연구》라는 책을 썼다. 정신분석 최초의 책이다. 안나 오의 오른팔 마비는 공수증, 카타리나의 구토증 같은 신경증의 증세들은 심리적 손상(psychic trauma)의 경험이 원인이고, 마음 속 어딘가에 숨겨진 손상기억을 말해 버리면 치료된다고 생각했다. 손상 때 받은 감정이 억눌린 채 남아 있었는데, 이를 발산하기 때문에 해소되고 치료된다는 생각이었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비의식의 존재를 발견했고, 잊혀진 기억을 말하게 하는 치료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정신분석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그는 환자의 과거 기억에서 심리적 손상을 준 사건을 찾는데 집중했다. 마치 탐정이 범인을 추적하듯이 기억을 더듬어 손상경험을 찾아 내려 했다. 그런데 신경증을 일으키는 손상은 거의가 성적인 흥분과 관계된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성욕(sexuality)이라고 생각했다.

(이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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