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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오 증례(Anna O Case)

  • 해오름
  • 조회 2655
  • 2009.02.06 13:02
․ 안나 오 증례(Anna O Case)

 ‘안나 오’라는 이름의 이 환자는 빈의중산층 가정출신으로 21세였다. 예쁘고 지적이며 똑똑한 처녀였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늑막염으로 사경을 헤맬때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다가 병을 얻었다. 그녀의 증세들은 육체적으로는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심인성(心因性)인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물 공포증(恐水症, hydrophobia)으로 6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고 과일로 수분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 최면(催眠)상태에서 한 가지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집에는 불친절하고 기분 나쁜 영국인 하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하녀의 방에 들어갔는데 그녀가 기르는 개(안나 오는 ‘끔찍한 짐승’이라고 했다)가 방바닥에 놓인 유리잔의 물을 핥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구역질이 나도록 혐오감을 느꼈지만 예의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이 기억을 최면상태에서 회상하여 말하게 되었다. 하녀에 대한 온갖 불평과 혐오감을 다 털어놓았다. 쌓인 울분을 마음껏 표현한 뒤에 그녀는 놀랍게도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물을 달라고 하더니 많은 물을 마시고 잔을 입에 댄 채 최면에서 깨어났다. 물 공포증이 치료되었던 것이다. 증세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재발도 없었다.

 또한 그녀는 오른팔이 마비되었고, 영어로밖에 말을 할 수 없는 증세도 있었다. 빈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도시인데, 어느 날부터 그녀는 독일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증세 뒤에도 숨겨진 기억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고열로 신음하게 되었다. 그녀는 의사를 기다리는 사이에 잠깐 졸음에 빠졌다. 비몽사몽간에 벽에서 검은 뱀 한 마리가 기어 내려오더니 침대로 다가가 아버지를 물려는 광경을 보았다. 급히 뱀을 쫓으려 했으나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놀라서 잠을 깼다.
자기 손을 보니 손가락들이 뱀으로 변해 있었고, 손톱은 죽은 사람들의 얼굴로 보였다. 무서운 꿈을 깬 뒤에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다. 무서워서 기도를 하려고 했는데, 입에서 기도문이 나오질 않았다. 그 때 불현듯 어릴 때 배운 영어 기도문이 생각이 나서 영어로 기도를 드렸는데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의사가 타고 온 기차의 기적 소리를 듣고 그녀는 환각상태에서 깨어났다.
그 뒤부터 뱀같이 생긴 것만 보면 오른팔이 마비되고 경직되었다. 그리고 영어밖에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증세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기억을 회상해서 말해 버리고 난 뒤에 그녀의 증세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녀와 브로이어는 여러 번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

 그녀의 신경성 기침도 관련된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의 병을 간호하고 있던 어느 날, 밖에서 댄스 음악이 들려왔다. 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겨우 참았지만 편찮으신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이 때 기침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는 댄스 음악같이 리드미컬한 음악만 들리면 신경성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기침도 처음 났을 때의 기억을 회상하고 나서 증세가 사라졌다.

 거시증(물건이 크게 보이는 증세)과 사시(사팔뜨기)도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병상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눈을 뜨시고 시간을 물어 보셨다.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그러나 눈물이 어른거려서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들어서 눈 가까이에 대고 보았다. 눈동자가 코쪽으로 모아지면서 사시가 되었다. 그리고 눈 가까이 대고 본 시계판이 굉장히 커 보였다. 여기서 거시증이 생겼다. 시력장애도 그래서 온 것이었다. 시력장애도 그래서 온것이다. 그러나 눈의 증세들도 처음 나타났을 때에 대해 얘기한 뒤 사라졌다.

 그래서 안나 오는 이 치료를 ‘말하기 치료(talking cure)'라고 불렀다. 브로이어는 이 치료를 ’카타르시스법(cathartic method)'이라고 했다. 억눌린 감정이 발산되고 정화되어 마음의 상처(trauma)가 치료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안나 오의 이야기를 듣고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29세인 1885년, 프로이트의 생애에 큰 영향을 준 프랑스 유학의 기회를 잡았다. 파리에 있는 살페트리에 병원의 샤르코(Jean Martin Charcot) 교수 밑에서 4개월 동안 연수를 받았다. 프로이트는 샤르코 교수가 최면을 통해 환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프로이트를 놀라게 했던 것은, 최면을 통해서 손 ․ 발의 마비가 풀리기도 하고 마비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었다.

신경에 이상이 없어도 사지에 마비가 올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환자를 꾀병을 부리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그것은 꾀병이 아니었고, 정신의 숨겨진 힘에 의한 것이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이무석,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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