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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적 동일화(projective identification)

  • 해오름
  • 조회 2087
  • 2009.02.02 12:07
27.투사적 동일화(projective identification)

 투사적 동일화(投射的 同一化, projective identification)는 원시적 방어기제의 하나로,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환자는 분석가에게 내적 이미지를 투사한다.
 둘째, 분석가는 환자가 투사한 것을 비의식적으로 받아들여 동일화하고 환자의 조종을 받아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 즉 환자가 분석가에게 투사한 어떤 사람의 역할을 분석가가 하게 된다.
 이렇게 분석가가 환자의 투사적 동일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버그(Grinberg, 1979)는 투사적 역동일화(projective counteridentification)라고 명명했다. 일종의 ‘역전이’이다.
 셋째, 투사된 내용들은 분석가에 의해서 수정된 다음에 다시 환자에게 재투입(reintroject)된다. 환자는 자기가 투사한 내적 이미지가 분석가의 인격을 통과하면서 수정된 것을 동일화하여 자신의 내적인 대상을 수정한다.
 컨버그(Kernberg, 1987)의 증례는 개인의 정신 치료과정 속에서 투사적 동일화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으며, 치료에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환자는 20대 후반의 여자였다. 자기애적이고 경계선 성격장애환자였다. 즉 충동적이며 불안을 참지 못하고 승화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주기적인 심한 우울이 있고 자살 경향도 있었다. 그녀는 육체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러나 잘난 체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쌀쌀한 태도였다. 그런가 하면 때때로 심한 열등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녀는 주로 그녀가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는(unavailable) 남성들만을 골랐다. 자기를 따라다니는 대상은 무시하고 차갑게 거절했다.
 이 환자의 어머니는 성장배경이 보잘 것 없고 초라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놀랍도록 매력적인 딸을 자신의 욕구충족의 도구로 삼았다. 조종하고 간섭하고 책망했으며, 딸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굉장히 매력적인 분이었는데, 여자관계가 복잡했다. 환자의 아버지는 사업하랴, 여자 만나랴 너무 바쁜 분이라서 딸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청소년기일 때 갑작스런 병으로 죽었다.
 나는 그녀에게 1주일에 3회씩 정신분석을 시행했다. 그녀가 나(kernberg)를 분석가로 선택한 것은 내가 병원장이고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치료계약이 성립되자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고 승리감에 젖어 있더니, 얼마 가지 않아 분석을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회의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 시골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더럽고 자극도 없고 날씨도 지랄 같고 의욕을 파괴시키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시골에 처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분석가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분석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같은 도시에 산다면 얼마나 신날까!’ 하고 말하기도 했다.
 하루는 그녀가 멋지고 우아하고 차려 입고 치료시간에 나타났다. 먼저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남자 친구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유명한 변호사인데 자신과의 동거를 제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중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그녀는 현재 동거중인 애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침실 기교가 너무나 형편없어서 헤어진다고 했다. 세련된 맛이 없으며 보통사람이고 성생활 경험이 빈약하고 서툴며, 특히 옷을 촌스럽게 입기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했다.
 이번에는 화제를 바꾸어 그녀의 어머니가 나에 대해서 말한 평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나를 처음 만났을때 어머니는 반대했다는 것이다. 좀 더 정력적이며 환자를 휘어잡을 수 있는 분석가를 구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어머니의 생각에 동조한다는 것이었다. 즉 어머니는 좀 까다로운 분이기는 하지만 매우 지적인 여성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미안한듯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내 마음을 상하게 할 의도는 아니지만 내가 촌티나게 옷을 입으며, 자기는 남자들이 자신감이 있어 보여야 좋은데, 내게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했다. 또 이런 말도 했다. 내게 친근감이 가기는 하지만 지적인 깊이가 부족한 것 같으며, 내게 자기 마음을 열어 보였을 때 내가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지 걱정 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아주 다정하게 말했고, 나는 잠시동안 그녀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환자는 샌프란시스코의 남자 친구 얘기를 시작했다. 그와 만날 계획, 그에게 이 시골을 연구하게 하고 싶다는 등의 얘기였다.
 환자가 이런 말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자신이 무용지물(sense of futility)이 된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낙담과 우울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전에 그녀를 치료하는데 실패했던 많은 분석가들이 생각났다. 이제는 나도 그녀와 치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이제 치료가 끝장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고 환자의 잘 짜여진 언어의 껍질을 뚫고 내면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어졌다.
 이 때 갑자기 내게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이 환자가 방금 내게 한 말과 똑같다는 것이다. 즉 환자가 말한 그대로, 나 스스로도 내 자신이 생각이 깊지도 못하고 정확하지도 못해서 분석가로서 부적당하다고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환자의 말대로 내 자신의 신체적인 외모도 추악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자가 혹평을 했던 남자, 즉 성적 기교가 형편 없어서 그녀에게 버림받았던 그 남자에게 동정심과 공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확실해진 것은 그 치료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즉 나는 그녀가 이상화(idealize)했다가 재빨리 평가절하(devaluate)해 버린 많은 남자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치료초기에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분석가는 나뿐이라고 하더니 태도를 바꾸어 내가 그녀를 하나의 실험대상(specimen)으로 보고 희귀한 증례로서 관심을 가질 뿐이며, 목적이 달성되면 버릴 것이라는 의심이었다.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내게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내가 그녀를 하나의 실험대상으로 취급하고 무시하는 것에 대한 복수인 것이다. 이어서 떠오른 생각은 내 마음 속의 우울한 감정과 열등감이 그녀가 똑똑한 남자들 앞에서 느꼈던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녀가 자신을 바보 같고 무식하고 열등해서 타인들에게 실망을 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느꼈던 것처럼, 나 또한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또한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우월감에 차 있으며, 어머니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생각들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치료시간이 끝났다. 내 생각으로는 나의 침묵과 낙심이 환자에게 전해졌을 것 같았다.
 같은 테마가 다음 치료시간에도 계속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그 멋진 남자와 만날 계획, 성적 기교가 서툴고 볼품없는 남자와의 결별 이야기,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골에 대한 모욕적인 얘기들이 이번 시간에도 계속되었다. 이 연결을 보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 시골이 환자의 전이 속에서 나를 상징한다는 것과, 나는 그녀가 내게 투사한 평가절하된 그녀의 자아상(self-image)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그녀는 오만한 어머니의 우월감을 자기 것으로 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화함으로써 우월하게 되고 자신의 못난 모습은 내게 투사해 버림으로 어머니의 행동과 태도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즉 환자를 돌봐 줄 남자 친구를 가지려고 할 때마다 이것을 방해했던 어머니의 행동을 그녀 자신이 실행하고 있었다. 못된 어머니의 행동을 실행함으로써 교묘하게 어머니를 평가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이것은 지난 치료시간에 연상이 막혔던 것인데 그녀가 치료 초기에 말했던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즉 그녀는 내가 흥미있는 환자를 놓치기 싫어서, 그녀가 이 시골을 떠나는 것을 막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이런 행동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이용할 때마다 했던 행동이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해석해 주었다. 그녀는 나도 어머니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해석을 받아들였다.
 이 때 나는 환자에게 전체적인 해석을 해주었다. 나에 대한 그녀의 이미지, 즉 둔하고, 보기 흉한 외모에 매력도 없고 추악하며, 시골에 처박혀 살고 있는 나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그녀 자신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다. 즉 어머니로부터 비난과 욕을 먹고 공격을 당했을 때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갖게 되었던 자신의 이미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녀가 선택한 남자를 어머니가 허락해 주지 않았을 때 느꼈을 그녀 자신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우울감에 차있는데, 표면은 다정한 것이지만 은근히 나를 무시하고 있으며, 이것도 어머니에게서 받은 고통을 내게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다. 그녀 자신이 어머니의 역할, 즉 나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그녀는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를 철저히 파괴해 버린다는 것은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쓸 만한 분석가를 파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그 뒤에 오는 고통스러운 실망과 고독감을 피하기 위해서 그녀는 이 시골을 미워하고 떠나야만 했다는 것도 해석해 주었다.
 환자는 나의 해석을 수긍했다. 내가 말한 대로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시간 후 왠지 기분이 우울했었으나 지금은 기분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부탁을 했다.
 “선생님께서 그 남자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이곳으로 불러서 내가 매력 없고 형편없는 이런 시골에 산다고, 나를 얕잡아 보지 못하게 나를 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그녀와 나의 관계가 의존적인 관계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거만하고 경멸스럽고 못난 자신의 모습을 샌프란시스코의 그 남자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증례는 투사적 동일화의 전형적인 작용을 보여 주고 있다.
 먼저 그녀는 참기 힘든 자신의 못난 면을 분석가에게 투사했다. 그녀는 자기의 내적 경험, 즉 분석가도 무기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는 분석가를 교묘히 조종해서 그녀의 투사된 일면(aspects), 즉 못난 이미지 속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분석과정에서 분석가에게 투사해서 분석가가 갖게 된 자신의 못난 이미지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분석가를 환자로 보고 자신은 거만한 어머니가 되어 관계를 가진 것이다. 분석가 속에서 일어난 역전이(countertransference), 즉 못난이가 된 듯한 무기력감은 환자에 의해서 유도된 것이었다. 환자가 투사한 내면을 분석가가 동일화하여 갖게 된 것이다. 분석가인 컨버그 박사는 이 역전이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역전이를 통해 환자의 투사된 내면세계와 대상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해석이 먹혀들었고 분석은 제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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