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투사(projection)
투사(投射, projection)란 자신이 비의식에 품고 있는 공격적 계획과 충동을 남의 것이라고 떠넘겨 버리는 정신기제이다. 아이가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대변을 밖으로 밀쳐 내는 배변행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원시종족들이 인간의 잘못을 비생명적인 대상의 탓으로 돌리는 애니미즘(animism)을 들 수 있다. 자신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투사이다. 가장 미숙하고 병적인 정신기제이며, 망상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정신기제이다. 투사되는 내용은 투사하고 있는 사람의 비의식에 존재하면서 그에게 불안을 주는 충동이나 욕구들이다. 이것이 사고(thinking)의 형태로 투사되면 망상이 되고, 지각의 형태로 투사되면 환각이 된다. 망상이나 환각은 ‘비의식의 메아리(unconscious-echo)'라고 할 수 있다. 투사는 부정(denial)과 전치(displacement)의 방어기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B군은 18세 고등학생이다. 피해의식으로 인한 불안 때문에 정신과에 왔다. 누군가가 자기를 죽일 것 같다고 했다. 밤에는 더욱 심해서 잠자리에 십자가를 안고 들어가야 했다. 주기도문을 열 번 이상 외어야 안심이 되었다. 잠든 사이에 귀신이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B군은 칼이나 날카로운 쇠붙이를 보면 안절부절 해졌다. 그것으로 자기가 누군가를 찌르는 환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 경찰에 체포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파멸이야.”
그는 칼은 물론이고 포크나 연필 끝도 볼 수가 없다. 성적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친구들도 모두 떠나 버렸다. 친구들은 B군이 자꾸 오해를 하고 의심을 하기 때문에 떠나 버렸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야속하고 밉기만 했다. 도시 한가운데에 폭탄이 터져 수많은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곧 놀라고 죄악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B군은 열심히 학교에 나갔다. 자신이 비정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괴로운지도 모른다.
B군의 문제는 무엇일까? 귀신 공포의 숨은 원인이 무엇일까? 그를 괴롭히는 날카로운 물체에 대한 두려움과 살인 팬터지는 왜 자꾸 떠오르는 것일까? 그는 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잘 할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었다.
B군은 비의식 속에 심한 증오심과 살인충동을 갖고 있었다. 그 대상은 부모였다. 그는 어머니를 부를 때 ‘그 여자’라고 했고, 아버지는 ‘그 새끼’라고 했다. 그가 알고 있는 한 부모는 차갑고 인정 없고 동생들과 차별대우하고 미워했으며, 두 분 사이도 갈등이 매우 심했다.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은 기억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울고 있는 자기를 몰인정하게 떼어 놓고 직장에 나가던 뒷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발가벗겨 쫓겨났던 기억을 말할 때는 주먹을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니는 말려 주지도 않았다. B군의 마음 속에 있는 증오심이 살인충동을 일으켰다. 이 살인충동은 그의 팬터지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칼로 누군가를 찌르고 피투성이로 만든다든지, 도시 한가운데에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의 몸이 찢겨지는 환상들 속에서 숨겨진 그의 살인충동을 볼 수 있다. 그가 날카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마음속의 살인충동 때문이다. 이러한 팬터지와 공포증은 그를 괴롭히는 증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살인자가 될 위험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팬터지는 자신의 살인행동의 결과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제동장치의 역할을 해 주었다. 칼에 대한 공포증은 살인도구로부터 그를 멀리 떼어 놓았다. 정신적 증세란 이렇게 환자가 위험한 충동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는 비의식적인 노력일 수 있다.
B군의 귀신 공포증과 살해당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자신 내부의 증오심 때문이었다. 자신의 증오심을 귀신에게 ‘투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이 부모를 살해하려 한다고 생각지 않고 귀신 피해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부모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되면 자신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생긴다.
“나는 나쁜 놈이다. 부모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다니, 나는 벌을 받을 것이다.”
이런 죄책감이 응징의 팬터지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B군은 자신을 처벌할 대상으로 귀신을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은 환자의 종교적 ․ 사회적 상태에 따라, 또는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젊은 환자는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 한다.”고 침대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 환자는 자신의 죄악감에 대해 응징하는 대상으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다. 또 어떤 환자는 “경찰이 나를 미행하고 있고, TV에 도청장치를 해 놓았다.”라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 환자는 경찰을 ‘투사’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다.
B군은 자신 내부의 문제를 귀신이라는 자기 밖의 대상에게 ‘투사’했다.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귀신이나 날카로운 물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적인 충동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된다. 자신의 불행을 자꾸 타인 때문이라고 ‘투사’할 때는 B군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커지고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문제가 복잡해진다. 윌 주변에서도 이런 ‘투사’의 심리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쟁심이 강한 두 사람이 탁구를 칠 때 한 사람이 게임에서 졌을 경우, 그는 이 패배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라켓이 나쁘기 때문이야.”하며 패배의 원인을 라켓에 돌려 버림으로써 패배감의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고 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두 아이가 아빠 방에서 놀다가 아빠가 애지중지하던 도자기를 깨뜨렸을 때 아빠 앞에서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너 때문이야”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형은 동생에게, 동생은 형에게 책임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형이 좀 더 성숙한 경우라면 애기가 달라진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빠, 동생을 이 방으로 데리고 들어온 제 잘못이에요. 저를 벌 주세요.”
또 동생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냐, 아빠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잉크병을 던졌어. 용서해 주세요. 형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빠는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더욱 사랑하고, 용서할 것이다.
유치한 인격의 사람일수록 ‘투사’를 많이 쓴다.
노동자 ․ 농민 ․ 민중의 이익을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재벌들과 가진 자들에 대해서 극심한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민중이 못사는 것은 재벌들과 정부 때문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격했다.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 100만 원도 안 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동정하며, 모든 것이 독재자 때문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그는 비싼 외제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가 말한 노동자의 월급 6개월치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해외여행도 즐겼다. 그는 자신 안에 숨겨진 내면의 대상에게 갈 분노를 외부의 재벌이나 정치가에게 투사하고 있었다.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의 이익을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집 파출부에게는 지나치게 인색하고 몹시 심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권과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여동생을 잔인할 정도로 구타하는 사람도 있고, 부인이 정에 굶주려 우울증에 빠져 울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인권은 소중한 것이고, 인권을 위한 투쟁도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적으로 이 일에 헌신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신의 분노나 수치심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의 문제를 외부의 대상에게로 투사한 결과일 수도 있다.
“형제여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라. 그 다음에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보리라.”하신 에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투사심리를 지적한 말이다.
투사(投射, projection)란 자신이 비의식에 품고 있는 공격적 계획과 충동을 남의 것이라고 떠넘겨 버리는 정신기제이다. 아이가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대변을 밖으로 밀쳐 내는 배변행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원시종족들이 인간의 잘못을 비생명적인 대상의 탓으로 돌리는 애니미즘(animism)을 들 수 있다. 자신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투사이다. 가장 미숙하고 병적인 정신기제이며, 망상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정신기제이다. 투사되는 내용은 투사하고 있는 사람의 비의식에 존재하면서 그에게 불안을 주는 충동이나 욕구들이다. 이것이 사고(thinking)의 형태로 투사되면 망상이 되고, 지각의 형태로 투사되면 환각이 된다. 망상이나 환각은 ‘비의식의 메아리(unconscious-echo)'라고 할 수 있다. 투사는 부정(denial)과 전치(displacement)의 방어기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B군은 18세 고등학생이다. 피해의식으로 인한 불안 때문에 정신과에 왔다. 누군가가 자기를 죽일 것 같다고 했다. 밤에는 더욱 심해서 잠자리에 십자가를 안고 들어가야 했다. 주기도문을 열 번 이상 외어야 안심이 되었다. 잠든 사이에 귀신이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B군은 칼이나 날카로운 쇠붙이를 보면 안절부절 해졌다. 그것으로 자기가 누군가를 찌르는 환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 경찰에 체포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파멸이야.”
그는 칼은 물론이고 포크나 연필 끝도 볼 수가 없다. 성적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친구들도 모두 떠나 버렸다. 친구들은 B군이 자꾸 오해를 하고 의심을 하기 때문에 떠나 버렸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야속하고 밉기만 했다. 도시 한가운데에 폭탄이 터져 수많은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곧 놀라고 죄악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B군은 열심히 학교에 나갔다. 자신이 비정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괴로운지도 모른다.
B군의 문제는 무엇일까? 귀신 공포의 숨은 원인이 무엇일까? 그를 괴롭히는 날카로운 물체에 대한 두려움과 살인 팬터지는 왜 자꾸 떠오르는 것일까? 그는 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잘 할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었다.
B군은 비의식 속에 심한 증오심과 살인충동을 갖고 있었다. 그 대상은 부모였다. 그는 어머니를 부를 때 ‘그 여자’라고 했고, 아버지는 ‘그 새끼’라고 했다. 그가 알고 있는 한 부모는 차갑고 인정 없고 동생들과 차별대우하고 미워했으며, 두 분 사이도 갈등이 매우 심했다.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은 기억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울고 있는 자기를 몰인정하게 떼어 놓고 직장에 나가던 뒷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발가벗겨 쫓겨났던 기억을 말할 때는 주먹을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니는 말려 주지도 않았다. B군의 마음 속에 있는 증오심이 살인충동을 일으켰다. 이 살인충동은 그의 팬터지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칼로 누군가를 찌르고 피투성이로 만든다든지, 도시 한가운데에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의 몸이 찢겨지는 환상들 속에서 숨겨진 그의 살인충동을 볼 수 있다. 그가 날카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마음속의 살인충동 때문이다. 이러한 팬터지와 공포증은 그를 괴롭히는 증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살인자가 될 위험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팬터지는 자신의 살인행동의 결과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제동장치의 역할을 해 주었다. 칼에 대한 공포증은 살인도구로부터 그를 멀리 떼어 놓았다. 정신적 증세란 이렇게 환자가 위험한 충동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는 비의식적인 노력일 수 있다.
B군의 귀신 공포증과 살해당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자신 내부의 증오심 때문이었다. 자신의 증오심을 귀신에게 ‘투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이 부모를 살해하려 한다고 생각지 않고 귀신 피해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부모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되면 자신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생긴다.
“나는 나쁜 놈이다. 부모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다니, 나는 벌을 받을 것이다.”
이런 죄책감이 응징의 팬터지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B군은 자신을 처벌할 대상으로 귀신을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은 환자의 종교적 ․ 사회적 상태에 따라, 또는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젊은 환자는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 한다.”고 침대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 환자는 자신의 죄악감에 대해 응징하는 대상으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다. 또 어떤 환자는 “경찰이 나를 미행하고 있고, TV에 도청장치를 해 놓았다.”라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 환자는 경찰을 ‘투사’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다.
B군은 자신 내부의 문제를 귀신이라는 자기 밖의 대상에게 ‘투사’했다.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귀신이나 날카로운 물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적인 충동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된다. 자신의 불행을 자꾸 타인 때문이라고 ‘투사’할 때는 B군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커지고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문제가 복잡해진다. 윌 주변에서도 이런 ‘투사’의 심리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쟁심이 강한 두 사람이 탁구를 칠 때 한 사람이 게임에서 졌을 경우, 그는 이 패배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라켓이 나쁘기 때문이야.”하며 패배의 원인을 라켓에 돌려 버림으로써 패배감의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고 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두 아이가 아빠 방에서 놀다가 아빠가 애지중지하던 도자기를 깨뜨렸을 때 아빠 앞에서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너 때문이야”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형은 동생에게, 동생은 형에게 책임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형이 좀 더 성숙한 경우라면 애기가 달라진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빠, 동생을 이 방으로 데리고 들어온 제 잘못이에요. 저를 벌 주세요.”
또 동생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냐, 아빠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잉크병을 던졌어. 용서해 주세요. 형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빠는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더욱 사랑하고, 용서할 것이다.
유치한 인격의 사람일수록 ‘투사’를 많이 쓴다.
노동자 ․ 농민 ․ 민중의 이익을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재벌들과 가진 자들에 대해서 극심한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민중이 못사는 것은 재벌들과 정부 때문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격했다.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 100만 원도 안 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동정하며, 모든 것이 독재자 때문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그는 비싼 외제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가 말한 노동자의 월급 6개월치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해외여행도 즐겼다. 그는 자신 안에 숨겨진 내면의 대상에게 갈 분노를 외부의 재벌이나 정치가에게 투사하고 있었다.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의 이익을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집 파출부에게는 지나치게 인색하고 몹시 심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권과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여동생을 잔인할 정도로 구타하는 사람도 있고, 부인이 정에 굶주려 우울증에 빠져 울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인권은 소중한 것이고, 인권을 위한 투쟁도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적으로 이 일에 헌신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신의 분노나 수치심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의 문제를 외부의 대상에게로 투사한 결과일 수도 있다.
“형제여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라. 그 다음에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보리라.”하신 에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투사심리를 지적한 말이다.